"사람을 강아지 나눠주듯 할 건가"
2017.09.01 15: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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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한국 해외입양 65년] 입양인 국적 취득의 국제 기준

한 아이의 국제입양이 완료되기 위해서는 입양이라는 가족법적 절차와 국제이주라는 이민법과 국적법의 절차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사회는 아동이 홀로 수만킬로를 이동해서 양부모를 찾아가고, 양부모의 나라의 법원에서 입양절차를 진행하는 이야기에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국제 기준으로는 이런 절차가 매우 이례적이라는 사실에 둔감하다. 그리고 ‘그게 뭐가 문제인가’ 라고 생각한다.

이런 절차가 당사자인 입양아동에게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는 이미 이전 기사들에서 상세하게 서술한 바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 미국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입양인 국적 취득 문제와 관련한 대책 중 하나로 이민국에 핫라인을 개설해 이를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입양인들 다수는 자신의 시민권 취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미 이민국 핫라인에 전화를 거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의 불안정한 지위가 노출되는 것 자체가 두렵고 위험하다고 느낀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에서 이민자들의 지위는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그런데 당연히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또 그래야 마땅한 시민권을 이제 와서 가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입양인들에겐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 있다. 시민권 획득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고, 비용도 수천 달러가 든다. 시민권을 가지지 못한 결과는 입양 부모가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아주지 않았기에 발생했다. 주로 흔히들 파양이라고 말하는 리홈이 되어 다른 가정으로 옮겨졌거나, 양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많다. 그 결과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취약 계층일 가능성도 높다. 입양 당시 영유아였을 이 입양인들은 이들에게 책임을 전혀 물을 수 없는 사태의 결과로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이런 이유로 국제입양 아동의 양부모와 같은 국가의 국적취득은 국제입양에 대한 국제법 규범이 생겨나면서부터 중요하게 다뤄졌다.

아동의 국제입양은 세계 제2차대전 이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 국가에서 미국으로의 이동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유럽으로 파병되었던 미군이나 군무원 만이 유럽 아동을 입양할 수 있었다. 입양대상 아동은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전쟁 피해가 극심하고 고아가 많이 발생한 국가에 한정됐으며, 부모가 모두 사망한 명실상부한 16세 미만의 고아가 입양대상이 되었다. 입양을 원하는 미군이나 군무원들은 현지 법원에서 아동의 입양을 허가 받고, 미국 난민법 상 전쟁고아 입양을 위해 제한된 숫자로 발행되는 비자, 즉 쿼터를 확보해서 미국으로 입국시켰다. 그러나 이 입양관계를 미국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각 주법원에서 아동의 입양허가를 다시 받아야 했다.

2차대전 직후 아동의 입양은 유럽 국가 간에도 이루어졌다. 국제입양의 폭발적 증가는 유럽 각국의 가족법과 입양법 간에 입양의 요건과 효력에 있어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입양아동과 양부모 국가 간에 서로 다른 법제 때문에 어느 나라의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가, 아동의 나라에서 입양재판을 받으면 그 효력이 양부모의 나라에서도 인정될 수 있는가 등 국제입양을 둘러싼 각종 법적 문제가 튀어나왔다.

1950년대부터 유럽 전문가들 사이에 단기간에 밀도 있는 회의가 다수 진행되었고, 이에 대한 국제협약도 등장하였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HCCH)의 '1965 입양에 대한 관할, 준거법, 재판승인에 대한 헤이그협약'과 유럽평의회 (Council of Europe)의 '1967 유럽아동입양협약'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아동의 입양에 대한 최초의 국제규범이라고 할 수 있고, 아동권리에 대한 국제규범의 발달에 입양문제가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965 헤이그협약에서는 한 나라에서 허가된 입양은 모든 체약국에서 자동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원칙을 도입하였다. 입양의 허가는 각국 국내법과 법원의 주요 권한임을 고려해볼 때, 아동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망으로서 입양으로 성립된 가족관계를 인정하고, 그 효력으로 국적 취득을 보장하는 목적이 깔려있다. 1967 유럽아동입양협약에서는 아동이 계속 생활해야 하는 입양국의 국적 취득을 신속 용이토록 해야 한다는 의무를 당사국 정부에 부과한다. 아동이 국제입양되었다고 해서, 출신국의 국적을 반드시 박탈해야 한다고는 규정하지 않는다. 다만 입양국의 국적 취득이 우선임을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국제입양 아동에게 입양국의 국적을 부여하는 것은 만약 그 입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아동이 거주하는 국가의 국적 취득을 통해 그 나라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될 수 있다.

1989 UN아동권리협약에서도 국제입양 아동이 국내입양 아동과 동등한 보호 수준과 절차적 안전망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당사국의 의무(제21조의 c)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입양법은 아동의 국적 박탈에만 관심이 있었지, 국적 취득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안은 양국 모두 등한시 했다.

1961년 미국의 이민법 (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Act)에 규정된 '고아'라는 자격은 유럽의 전쟁고아의 경우와 비교하면, 매우 완화된 것으로 사실상 미혼모가 낳은 아동을 '고아'라는 범주에 포함시켜 입국 자격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신설되었다. 한국 아동들은 이 규정의 적용을 받아 한국 여권과 영주권만이 보장되는 고아입양을 위한 비자(IR-4)를 발급받아 미국으로 입국했다.

1961년 한국 근대법제가 무더기로 통과되던 시기에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회의에서 고아입양특례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명백하게 미국 이민법 상의 ‘고아’자격에 맞추기 위해 한국 법원이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했고, 미국에서 입양이 완료되면 한국의 호적에서 제적한다는 규정을 명시하였다. 12조에 불과한 이 법 조항에는 국적박탈의 효과가 있는 제적의 근거는 두면서도, 미국에서 입양되는 아동의 안전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 법안에 대해 당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김진 교수는 1962년 9월 7일자 <조선일보>에 '강아지 나눠주듯 할 것인가-고아입양특례법의 맹점'이라는 기고를 싣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법제는 2013년까지 사실상 근간을 유지하면서 한국의 국제입양 제도의 기본 원칙을 이루고 있다. 아직도 현행 한국 입양특례법에는 아동이 입양국의 국적을 취득하면, 법무부 장관이 직권으로 그 국적을 말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국적의 취득 여부를 지켜보고 확인하는 의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의 이민당국은 자국에 IR-4 비자로 입양을 위한 입국(관련 기사: [단독]외교부의 거짓말, 美 "일부 한국입양아 자동시민권 못받아"한국은 1만5천명 미 입양인 '자동시민권' 내던졌다)하는 것이 아동에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동을 입국시키는 데는 그토록 허술할 정도로 적극적인 기준을 적용했던 미국이 정작 이들이 국적을 취득하는 절차에 대한 책임은 외면해 왔다. 현재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한국으로부터의 입양인들이 시민권이 없는 상황인지 양국 정부 어느 부처에서도 모르고 있다.



▲ 1962년 9월 7일 <조선일보>에 실린 서울대 법대 김진 교수 기고문. ⓒ조선일보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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