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 헤밍웨이의 진면모
2017.08.24 16: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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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특유의 간결한 하드보일드 문체, 전후 잃어버린 세대의 허무주의를 시대정신으로 길어 올린 글로 20세기 영문학의 상징이 됐다. 위대한 문호의 이면을 떠받친 마초적 자부심과 파리에서의 시간은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부분 드러난다. 

실상 헤밍웨이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글인데, 우리 대부분은 그를 온전히 알기란 어려웠다. 그의 소설을 접하긴 쉬웠으나 기자, 특히 전쟁기자 헤밍웨이의 글을 쉽게 읽기란 어려웠던 까닭이다. 

헤밍웨이는 1917년, 18살에 고교를 졸업한 후 지역신문사 <캔자스 시티 스타>에서 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후 귀국해서도 일간지 <토론토 스타>에 글을 썼다. 이후 특파원으로 파리 생활을 이어가다 소설가로 등단했다. 소설가로 이름을 알린 후에도 그는 여전히 기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그리스-터키전을 헤밍웨이는 전쟁기자로서 체험했다. 위대한 소설가 이전에 헤밍웨이는 25년에 걸쳐 400여 편의 기사를 쓴 거장 기자였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헤밍웨이 지음, 김영진 엮고 옮김, 한빛비즈 펴냄) ⓒ프레시안

<어니스트 헤밍웨이>(헤밍웨이 지음, 김영진 엮고 옮김, 한빛비즈 펴냄)는 한빛비즈의 '더 저널리스트' 시리즈 첫 권이다. 헤밍웨이가 생전에 쓴 저널리즘 작품을 엮은이가 선별한 책이다. 엮은이는 디지털화하지 않아 접근이 어려웠던 그의 기사를 외국 도서관 자료와 온라인 스캔본 등을 바탕으로 구해 이 책을 만들었다. 앞으로 조지 오웰과 칼 마르크스의 저널리즘 글도 '더 저널리스트' 시리즈로 소개될 예정이다. 

엮은이의 노력 덕에 탄생한 책을 통해 독자는 헤밍웨이의 눈으로 당시 시대상을 선명히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출판사의 설명대로 이 책에 드러나는 모습은 과거의 것만이 아니다. 지금 여기 우리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의 청춘을 보며 ‘잃어버린 세대’를 꼭 과거 세대로 한정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권자에게 자신을 광고하겠다는 일념으로만 경기장을 찾는 1920년 토론토 시장이었던 토마스 랭턴 처치에게 홍수 피해 지역에서 남들이 장화를 신겨주길 기다리다 사진 한 번 찍히고 훌쩍 떠나버리는 지금 정치인의 모습을 대입하는 건 어렵지 않다. 

특히 헤밍웨이가 무솔리니를 인터뷰하고 갈등이 고조되는 유럽을 지켜본 후 1935년 9월 <에스콰이어>에 쓴 글 '다음 세계대전을 기다리며'는 지금 여기의 우리가 곱씹어 읽을 만하다. 글의 일부 문장을 발췌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미국)는 돈을 벌 것이다. 정치적 프로파간다와 사람들의 탐욕, 전쟁을 통해 망가진 국가 재정을 되살려보려는 속셈이 우리를 전장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일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사람들은 전쟁터에 나가기를 거부하거나 복무를 면제받는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이탈리아는 애국자들의 나라다. 사회가 어지럽고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정부의 탄압과 가혹한 세금 부담이 도를 넘어서도 무솔리니가 다른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기만 하면 그의 충실한 애국 시민들은 적을 무찌르겠다는 열의에 눈이 멀어 그간의 불만 따위는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전쟁을 향한 준비는 이미 시작됐다. 오랜 기간 구상된 살인 계획에 우리는 매일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 전쟁이라는 이름의 살육을 막는 법은 단 하나다. 전쟁을 만드는 지저분한 수법들, 전쟁을 기다리는 더러운 자들과 범죄자들, 이들의 어리석은 전쟁 운영 방식을 공개함으로써 선량한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현대전에는 승자가 없다. 현대전에는 승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을 5년 앞둔 시기 헤밍웨이 예측의 날카로움에 감탄하고 말 글이 아니다. 각 문장이 온전히 지금 한국, 북한, 미국, 중국의 여러 인물을 겨냥한다. 

헤밍웨이는 작가의 중요한 덕목으로 경험을 꼽았다. 그가 평생을 저널리스트로 살았기에 가능한 조언이다. 지금과 다르지 않게 헤밍웨이의 시대를 새긴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헤밍웨이 이해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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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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