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파동, 남의 일 아니다
2017.08.11 10: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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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의 안전사회] 식품 안전, '정직한 소통'이 최우선
벨기에에서 시작된 살충제 계란 파동이 유럽 국가를 넘어 우리나라에서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계란은 계란 자체로도 많이 쓰이지만 마요네즈, 빵이나 과자 등 다양한 계란 가공품에 들어가 벨기에산 와플 등이 인기를 끄는 우리나라도 여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식품업계가 1999년 벨기에에서 일어났던 돼지·닭고기 등 축산물 다이옥신 파동의 악몽을 떠올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유해물질은 광범위 살충제로 쓰이는 피프로닐(fipronil) 성분이다. 페닐피라졸 성분 계열의 이 살충제는 일반인들에게 낯선 화학물질로 보이지만 실은 우리와 매우 친숙하고 자주 쓰인다.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에서 기생하는 벼룩이나 집안의 바퀴벌레 퇴치용 약의 대표주자가 바로 피프로닐 살충제이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도 닭 등을 대량사육하며 이 살충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성분을 해충이 먹게 되거나 피부에 닿게 되면 해충의 GABA(Gamma-Amino Butylic Acid) 수용체를 억제해 신경계의 염소이온 이동을 차단한다. 이는 중추신경계 통제 불능상태로 이어져 마침내 해충은 죽고 만다. 피프로닐은 서서히 작용하는 독성성분이다. 피부의 지방과 털의 모낭에 저장되어 피부 털에 작용한다. 24~48 시간 사이 지속적으로 효과를 나타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피프로닐을 2급 보통독성 살충제로 분류하고 있다. 쥐에서 급성 반수치사량(LD50)은 97mg/kg이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피프로닐의 사람에 대한 만성 독성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결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환경청은 피프로닐을 인체발암가능물질인 그룹C로 분류하고 있다. 쥐 암컷과 수컷 모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갑상선 소낭세포 종양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발암 연구에서는 아직 영향이 나타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피프로닐 살충제 성분 애완동물 구충제로 널리 쓰여


며칠 전 생후 2개월을 갓 넘긴 고양이를 데리고 동네 동물병원에 가서 첫 종합백신을 맞힌 적이 있다. 수의사는 이 백신과 함께 구충제를 고양이 목 뒷부분에 발라주었다. 당시 성분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구충제에 피프로닐 성분이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격적인 애완동물 시대를 맞이한 우리나라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피프로닐 살충제를 가까이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유럽국가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계란 살충제 파동은 식품안전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축산 농가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러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벨기에에서 시작해 유럽의 7월과 8월 한여름을 달구고 있는 이 파동은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이들 나라의 시장에서 수백만 개의 계란이 판매 중지되거나 회수 조처됐다. 닭들도 대량으로 도살됐다. 네덜란드는 계란에서 고농도의 피프로닐이 발견됐다고 발표한 뒤 180개의 축산 농장을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에서 이 파동이 실제 시작됐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네덜란드에서 2016년 11월 계란이 피프로닐에 오염됐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검출량이 기준치 이하라며 이를 대외적으로 제때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때 공개가 이루어졌더라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파동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식품안전, 소통의 실패는 불신으로 이어져 위기 초래

유럽 살충제 계란 파문은 소통의 완전한 실패가 초래한 결과물이다. 위기관리와 위기소통에서 '항상 정직하라!'는 소통의 으뜸 원칙을 무시한 것이다. 지금 그 대가를 크게 치르고 있다. 우리 식품안전·축산 당국이 새겨야 할 첫 번째 교훈이다. 소통의 실패로 식품안전 관리의 신뢰를 잃으면 설혹 유해물질이 기준치 이하일지라도 "안전하다"는 정부의 발표를 시민들은 결코 믿지 않는다.

유럽연합에서는 식품 생산에 피프로닐을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에서 현재 몇몇 해충 구충제 판매업체에 대한 범죄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벨기에 경찰은 관련 수사에 들어가 한 가축 해충 구충제 판매회사가 루마니아에서 관련 살충제 제품을 6입방 톤가량 수입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까지 8~9개월 동안 일부 유럽 국가 소비자들은 피프로닐 오염 계란과 계란 가공품. 어쩌면 닭까지도 소비했을 가능성이 높다. 유럽 피프로닐 계란 파동이 소비자들에게 준 충격이 매우 크며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이 이 같은 식품위해파동을 겪은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 발 광우병 파동으로 프랑스 등 다른 유럽연합 국가에서도 광우병 소가 다수 발견돼 유럽 전역이 패닉에 빠진 적도 있었다. 또 우리나라에도 악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1999년 벨기에 닭·돼지고기 등 축산물 다이옥신 파동을 꼽을 수 있다.

이 사건은 전 세계가 아직도 기억할 정도로 당시 큰 충격을 주었다. 가축사료가 다이옥신에 오염된 줄 모르고 기른 소·돼지·닭의 고기와 계란, 그리고 그 가공품을 생산한 벨기에뿐만 아니라 이번처럼 네덜란드, 프랑스 등 여러 국가들도 함께 다이옥신 파동 속으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벨기에 정부는 가축 사료가 다이옥신에 오염된 것을 알았지만 4개월이 지나서야 이를 인정해 축산물과 그 가공품들에 대한 리콜 조치를 취했다. 소·돼지고기와 닭고기, 계란 가축사료를 수입했던 국가에서 한결같이 일대소동이 벌어진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1999년 벨기에 돼지고기 다이옥신 파동 때는 정권이 무너져

세계 각국에서는 벨기에산 소·돼지고기, 닭고기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와 함께 유럽산 과자 등에 대한 수입도 불허했다. 삼겹살을 유럽국가로부터 다량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공급 부족으로 삼겹살 값이 뛰어 '금겹살'이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벨기에 집권 여당은 그 뒤 선거에서 참패해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식품위해 파동 때 잘못 대처하거나 식품안전관리에서 신뢰를 잃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벨기에 다이옥신 파동은 여실히 교훈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번에 또 다시 유사한 사건이 벌어짐으로써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이 그 교훈을 뼛속 깊이 새기지 못한 것이 증명됐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처럼 감염병이 한 나라에서 창궐하면 즉각 다른 나라로 퍼져 순식간에 지구촌 문제가 되듯이 식품위해물질 파동도 한 나라에서 발생하면 수출입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문제로 번지게 된다.

유럽 살충제 계란 파문은 외국에서 벌어지는 식품위해 사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 사회도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교훈을 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가축사료 또는 가축에게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항균제, 항바이러스제, 살충제로 인한 식품위해파동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축산·식품 안전관리와 행정, 그리고 올바른 위해소통을 통한 신뢰 쌓기가 중요하다는 교훈도 함께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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