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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의 근원을 '인양'하는 서사의 기록장
2017.04.24 16: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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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재난을 묻다: 반복된 참사 꺼내온 기억, 대한민국 재난연대기>

메두사와 같은 참사 덩어리를 망각에서 인양하다

"애통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4절

무겁지만 소중하게 다가온 책을 읽으면서 반복해서 떠오른 기독교 성경의 한 구절이다. 그만큼 이 책은 간절했다. 억울하게 죽어간 자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면서 통곡하는 자들의 모습을 책의 저자들이 읽는 이에게 너무도 간절히 전했기 때문이다. 어떤 운명이나 순종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참사의 비극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 서럽게 죽어간 넋들이 위로받고, 애통해하는 자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금씩 눈이 떠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애통하는 자들은 다시 복과 위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 누구도 또 다른 참사로 통곡하지 않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 3주년에 맞춰 우리에게 다가온 한 권 책. 어쩌면 저 어둡고 차가운 깊은 바다 밑에서 인양된 세월호 선체처럼 이 책 또한 우리에게 '인양'된 것일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로 악순환된 세월호 이전의 참사들에 대한 기억을 책의 저자들은 우리의 망각 속에서 인양시켰다. 출판사 서해문집을 통해서 지난 4월 초, <재난을 묻다 : 반복된 참사 꺼내온 기억, 대한민국 재난연대기>가 출간되었다.

그렇다. 이 책은 몇몇 참사에 대한 글을 단지 묶어낸 것이 아니라, 아주 흉물스럽게 감춰져 있던 세월호 참사의 오래된 기원을 드러내는 글이다. 수록된 7가지 참사들은 모두가 메두사와 같이 얽혀있는 수십 년간 진행된 거대한 참사 덩어리였다. 한 권의 책에 기록된 모든 참사들에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커녕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이윤과 성장의 검은 그림자만 구석구석 깊숙이 그리고 아주 축축하고 을씨년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희생자들이 억울하게 숨을 멈춰갈 때, 그리고 가족과 벗들이 서러운 넋을 기리며 통곡할 때, 이들은 저 검은 그림자에 가려진 채 '보이지 않는 자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버렸다. 그들을 위한 안전장치는 없었고, 그들의 생명은 몇몇에게 독점되는 이익 속에서 고깃덩어리 취급을 받았다. 그들이 위험할 때 도와줄 구조 시스템은 완전히 멈춰있었다.

애초 당시 그런 모든 구조 시스템은 생명 보호가 아니라 이익 추구를 위한 맞춤형 장비나 인력이었기에 작동할 필요도, 동원될 까닭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진상규명과 조사는 저 이익 구조, 그리고 이 구조를 지탱하는 권력관계에 피해가 가장 적게 나는 방향으로 처리되었다. 더 처절했던 건 살아남아 통곡하는 자들의 쏟아지는 눈물을 보상금을 바라는 악어의 눈물처럼 비하하며 비난의 돌을 던지는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도덕과 상식이었다. 그래서 죽은 넋들은 여전히 위로받을 수 없었고, 통곡하던 자들의 눈물은 지금도 마를 날이 없다. 세월호 참사는 바로 이 참사, 재난 연대기의 끝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프레시안(서어리)


작가들

<재난을 묻다>의 저자들은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그 해 여름 만들어졌다. 이들은 세월호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함께 써내려갔다. 그리고 이들은 세월호에 대한 기록과 함께 참사에 대한 기록을 쓰기로 했다. 이 작업은 망각 속의 진실을 인양하는 아주 힘들고 외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작가들은 이 일을 지난 2년간 묵묵히 해내왔다. 여러 참사들을 글로 읽는 독자의 마음이 이리도 아팠는데, 직접 현장을 다시 찾아가고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와 흐느낌을 몸으로 겪어야 했던 작가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수없이 울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과거의 아픈 진실을 인양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제 이 인양된 기억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그것은 철저히 우리의 몫이다.

작가들의 기록은 생명과 존엄은 없고 오로지 건조한 숫자만 강조되는 '조사보고서'가 아니라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서사였다. 그래서 이 책은 차라리 한 권의 참극(慘劇) 단편소설집이기를 소망할 정도로 읽는 이를 사건 현장 한 가운데로 불러드린다. 그리고 마치 VR 헤드셋을 머리에 쓴 것처럼 그 통곡의 상황들이 읽는 이의 머리와 마음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VR 헤드셋을 벗어버리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과 달리, 책을 덮었지만 여전히 읽는 이는 그 현장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여전히 우리에겐 세월호 참사가 남아있고, 여전히 우리는 무언가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사, 규모와 이미지가 아닌 불안과 공포와의 대면

"그건 규모가 너무 작아 참사 사례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나의 취재는 이 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학교가 교육의 이름으로 행한 학습 과정에서 학생이 죽는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참사이기 때문이다." -<재난을 묻다> 235쪽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편에 실린 작가의 고백이다.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는 2013년 7월 17일 체험학습 일환으로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던 공주사대부고 2학년 198명이 어처구니없는 해병대 캠프 훈련을 받던 중 학생 5명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된 후 익사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1970년 겨울 침몰한 남영호 사건 최대 337명, 1998년 화성 씨랜드 화재 사건 23명 사망,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확정 사망 99명에 비하면 사망자 수도 비교적 적다. 하지만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활동을 하던 저자는 학교 교육 과정에서 학생이 사망한 사건, 그러나 '미해결된 참사'로 보이는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에 대한 기사를 쓰고자 유력 언론사를 찾아갔다. 기대와 달리 언론사 데스크는 작가의 기획안을 반려했다. "그건 규모가 너무 작아 참사 사례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데스크의 반려 사유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스펙터클하게 죽어가야 참사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100킬로그램이 넘는 고무보트를 10명의 학생들이 들고 바다로 들어가야 했다. 이들은 2시간 넘도록 고무보트를 들어 올리거나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더 깊이 들어가라는 교관의 말에 이미 학생들은 상명하복의 군인이 되어 버렸다. 몰려온 파도에 5명이 아닌 수십 명이라도 쓸려나가야 참사인가? '전원 익사'와 같은 헤드라인이 나와줘야 하는 것인가?

작가는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에서 경쟁과 입시 위주의 지옥 같은 학교 교육의 현실을 투사시킨다. 지진이 난 교실에서 수능을 위해 한 치의 동요도 없이 입시 공부에 집중하라 강요하는 학교가 아무런 안전조치도 없이 죽음이 파도와 함께 출렁이는 깊은 바다로 들어가라 명령하는 해병대 캠프와 무엇이 다를까?

참사였다. 5명이 아니라 1명이어도 참사였던 것이다. 사상자의 수, 현장의 어떤 잔혹함, 혹은 재산 피해 규모를 기준으로 참사가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의지하는 구조, 제도, 기반이 오히려 자신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고 느낄 때, 그러나 벗어날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낄 때 온 몸에 느껴지는 불안과 공포, 이것이 참사이다. 믿음과 희망의 박살이 참사이다.


ⓒ프레시안(서어리)


그들의 수습 - 수익과 성장 시스템의 '정상화'

마찬가지로 2013년 여수국가산단 대림산업 폭발 참사가 참사였던 것은 굉음의 폭발력 때문이 아니다. 1차 폭발 후 사고 회사는 사람들을 구조하지 않고 2차 폭발을 막는다는 이유로 시설보호차 탱크에 물만 뿌리고 있었다. 그래서 참사다. 수익을 올리거나 경비를 덜기 위한 덤핑과 하청, 그에 따른 무리한 과로 노동은 노동자들을 그저 값싼 재료로 전락시킬 뿐이다. 이윤과 성장의 검은 그림자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현장에도 암약하고 있었다.

이 책은 바로 참사에 동반되는 자극적인 이미지와 즉각적인 감성에 호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들은 그 이미지 사이사이에 스며있는 검은 그림자들을 드러낸다. 그리고 7명의 다른 작가들이 각각의 참사 기록을 맡았지만 1970년 12월부터 2014년, 아니 지금까지 진행된 하나의 거대하고 소름 끼치는 참사를 인양하고 있다.

참사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이 정상적이 것이 멈춰버리거나 무너지듯 다가오지 않는다. 마치 뻥튀기가 만들어질 때 '뻥'하고 옥수수가 터지기까지 오랫동안 뜨거운 열기가 옥수수에 전해져야 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생명과 노동이 수익을 올리기 위해 구입하는 값싼 재료 정도로 여겨지는 양적 성장 중심 개발 모델이 참사의 폭발을 위해 사회 구석구석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나기 전 해인 2013년, 이미 여수국가산단 대림산업 폭발 참사가 있었고, 이 사고 발생 4개월 후 반복된 참사가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였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발생 한 달 후 장성 효사랑 요양병원 화재 참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여기에는 언제나 권위주의가 함께하고 반공주의에 기반한 정치적 색깔론도 빠지지 않는다. 이 참사를 기록한 글에서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이 사설은 '참사의 책임소재를 명확히'하고 '구조적인 문제점까지 묻자'는 것을 "진보적 시각”이라 규정한다. 이 진보적 시각의 '반대편'은 국제행사인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앞세워서 참사를 조속히 매듭짓지 못하면 대구가 '3류 도시'로 전락할 것이라는 협박성 주장을 하고 있다. 도대체 이 두 목소리의 차이가 어떻게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차이'로 정의될 수 있는지 모를 노릇이다." -<재난을 묻다> 125쪽

인간 존엄성이 없는 사회 구조와 발전 모델은 참사의 기원임과 동시에, 모든 참사를 하나로 묶는 고리가 된다. 위 인용문에서도 드러나듯 참사를 대처하는 이 사회의 태도 또한 인도주의나 재발 방지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수습을 주도한 정치권, 언론, 기업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지 않는 '1류 도시'란 무엇일까? 그 도시에는 누가 사는 것일까? 책을 읽다 보면 참사의 수습은 모두 수익을 위한 성장의 속도가 다시 '정상'적으로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겪은 모든 참사들은 올바르게 수습되어 희생자의 넋과 살아남아 통곡하는 자를 위로하면서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의 반성과 변화로 귀결되지 않았다. 매번 안전 불감증을 없애자고 말하고, 각종 관련 제도가 시행되지만, 이 모든 시도들이 수익과 성장이라는 절대 가치를 넘어서지는 못해왔다.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었고, 연결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미 방향이 정해진 수습 과정은 그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즉 성장 속도의 복원을 위해 때로는 악질적인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책임져야 할 자들이 뒤로 숨어버리게 된다. 문제는 억울한 자들이 책임자가 된다는 것, 그리고 숨어버린 자들이 다시 다른 곳에서 성장 속도뿐만 아니라 또 다른 참사의 가능성 또한 복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재난을 묻다>는 1999년 6월, 23명이 사망한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의집 화재 참사와 2011년 7월 13명이 매몰로 사망한 춘천 봉사활동 산사태 참사는 반복되는 참사의 본질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불법 건축물을 지은 건축주, 불법과 편법으로 인허가를 해준 관청, 안전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기관은 무대에서 슬며시 사라진다. 또한 참사의 기원에는 난개발 문제와 관리 시스템의 부재가 늘 있어왔지만, 참사와 개발이 연결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자들은 인재(人災)를 천재(天災) 뒤바꿔버리고, 통곡을 운명이라 생각하도록 몰고 가기도 한다. 결국 하나의 참사는 또 다른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2014년 4월 16일은 다가왔고, 그 이후에도 우리는 참사의 공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남영호'라 쓰고, '세월호'라 읽는다 : 더 이상 순종하는 희생양이 아니다

<재난을 묻다>는 첫 번째 기록인 남영호 침몰 사건은 가장 깊은 곳, 가장 음산한 곳에서 꼭꼭 숨어 있다가 인양된 기억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4월 15일 출항한 세월호의 출항이 아니라 불법 과적으로 이미 출발 전부터 침몰하고 있었던 1970년 12월 15일 제주 서귀포항을 떠나던 남영호의 출발 뱃고동과 함께 시작했던 것이다. 남영호 참사는 아직도 당시 탑승자 수가 제대로 집계되지 못하고 있다. 최대 337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조는커녕 구조신호 수신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었다. 사건 소식이 전해진 것도 다음날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외신 보도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 정부와 언론사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현장 출동이 아니라 일본으로 국제전화를 거는 거였다. 책 속의 기록을 읽다 보면 남영호가 47년 전이라는 먼 시간 속에 벌어진 참사로 느껴지지 않는다. '남영호'라 쓰고 '세월호'라 읽게 된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종렬 씨(현재 70세)는 어머니를 잃고도 항의 한마디 못 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제주 유족의 경우 4·3의 유족이 다시 남영호 참사의 유족이 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특성은 정부와 맞서 싸우기 보다는 '팔자소관' '운명'으로 참사를 수용하는 순응적 기제로 작동했다.

운동권은 물론 시민사회라는 게 없던 때다 보니 유족 편에서 목소리를 높여줄 사람도 없었다. 독재의 공포가 일상에 깊게 드리운 시대였고, 참사는 민주화 세력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난을 묻다> 44쪽

참사를 팔자소관이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통곡하는 것이 '보상금 놀이'로 매도되는 비상식적인 윤리의 에스테메의 기원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침묵해야 했고, 순종해야 했다. 침묵과 순종 속에서 희생양이 되어가는 자신들을 받아드려야 한다는 것, '호모 사케르Homo Sacred'가 된다는 것이었다.

개발 독재가 모든 사람들을 집단 노동체계로 동원하면서 양적 생산력 향상에 사활을 걸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에 반하는 건 '비판적 성찰'이 아니라, '반국가적 행위'가 되어 버린다. 노동자 1명의 분신이 거대한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서막을 알렸지만, 3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사망한 남영호 참사는 그 서막에 같이 있지 못했다. 당시 사회운동 세력들은 이 참사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쉽지 않았고, 이 참사를 반독재 투쟁, 노동 운동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더 잔인했고 더 혹독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영호 참사가 가장 어둡고 깊은 곳에 가장 오랫동안 수장되어 있던 이유일 것이다.

50여 년이 지나 남영호 참사가 이 책에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작가들의 노력과 집념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들의 노력과 집념이 우리에게 성찰과 변화를 요구하는 '기록'으로 인양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오랜 시간 저 거칠고 메마른 가시밭길을 헤치고 온 우리의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의 피땀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빠르게 살아왔다. 해방, 갈등, 숙청, 전쟁, 혁명, 쿠데타, 산업화, 민주화, 탄핵. 서구 사회가 최소 이삼백 년의 시간을 보내며 겪어 온 모든 것들을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시키며 살아왔다. 너무도 빠르고 압축적으로.

이제 우리는 속도를 늦추고 우리의 삶에 대해, 존재의 의미에 대해, 존엄과 안전, 그리고 자유와 평등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가야 한다. 거대한 참사의 늪에서 우리 모두가 불안과 공포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사회가 공생과 공존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존엄함이 상실된 공멸의 지옥으로 빠질지는 이 성찰의 시간을 만들어 내는가의 여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월호 인양과 함께 과거의 기억을 인양하자. 그리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기억을 써가야 한다. 애통해하는 자들이 위로를 얻고 이 사회가 다시 존엄한 공동체로 회복될 수 있도록 말이다. <재난을 묻다>는 그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naeor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