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잊지 말아야 할 '세월호 특조위 농단 3년'의 기록
2017.04.14 00:06:24
[세월호 특조위를 말하다] '리멤버' 김재원, 조대환, 이헌 그리고 청와대

세월호가 드디어 뭍으로 올라왔다. 3년을 부르짖었던 구호가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마냥 기뻐만 할 때가 아니다. 세월호 선체를 인양했으니, 이제는 진실을 인양해야 한다. 세월호 진실 규명 작업의 2막이 열린 셈이다.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목격자, 관련자들의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고, 이제 막 바다에서 나온 세월호 선체는 녹슬고 망가졌다. 진실에 다다르는 길은 험난하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선 체계적으로 조사를 전담할 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2015년 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세워졌다. 전 국민의 열망을 담아 출범했던 특조위는 그러나 1년 9개월 남짓 활동 기간 내내 식물인간 상태였다. 정부 여당의 끝도 없는 방해 공작 속에 신음하던 특조위는 결국 지난해 9월 강제 폐쇄됐다.

특조위가 문을 닫자마자 생각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사태의 전말이 속속들이 밝혀졌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 차갑게 등 돌렸던 박근혜는 권좌에서 물러났고, '특조위 죽이기'에 나섰던 여권은 국정 농단 사태의 부역자가 되어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이러한 가운데 세월호 참사가 재조명받았다. 청와대 의료 농단, '박근혜 세월호 7시간' 의혹이 함께 불거진 것이다.

매주 100만, 200만 명이 모인 광화문 광장에는 다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구호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박근혜는 물러났고, 세월호는 올라왔다. 참사 진상 규명에 대한 전국민적 열망은 다시 부풀어 오르며 2기 특조위 출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2기 특조위 출범에는 일단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2기 특조위 법안이 국회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계류돼있다. 이변이 없는 한 오는 11월에는 본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현 야당이 정치력을 발휘하면 출범 시기를 더 앞당길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출범 그 자체가 아니다. 특조위 구성, 역할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며, 권한을 어느 선까지 쥐어줄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1기 특조위 구성원들은 과거의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지 않으면, 2기 특조위 또한 침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은 지금, <프레시안>은 2기 특조위의 성공을 위해 지난 1기 특조위를 돌아보고자 한다. 1기 특조위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그 길목마다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특조위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았던 정부 여당의 방해 공작들을 살펴본다.


ⓒ프레시안(최형락)


2014. 11 ~ 2015. 2 : '세금 도둑' 망언에 설립준비단 해체 주장

특조위의 탄생은 국민의 뜻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650만여 명이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법을 만들자며 서명 용지를 국회에 전달했다. 그리하여 2014년 11월 7일 제정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은 특조위 설립의 법적 근거가 되었고, 2015년 1월 1일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됐다.

정부와 '허니문'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듯, 특조위는 출범 전인 이때부터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시행령 발표 단 2주 만이었다. 2015년 1월 16일 당시 청와대의 '복심'이었던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활동도 시작하지 않은 특조위를 "세금 도둑"으로 몰았다. '13월의 세금 폭탄'으로 직장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을 때였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세금 도둑' 막말은 일종의 지침 역할을 했다. 여당 추천 특조위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김 전 부대표의 발언 이후 이틀 만에 황전원 특조위원은 특조위 설립준비단 예산 요구액에 대해 "황당하고 터무니없다"라고 비판했다. 조대환 부위원장은 설립준비단 해체를 발의했으나 부결되자, 설립준비단에 파견된 공무원에 대해 철수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프레시안(최형락)


2015. 3 ~ 2015. 6 : 시행령 논란, 그리고 출범 시기 논쟁의 서막

지금까지는 정부 방해 '공작'의 시작에 불과했다.

특조위의 정체성 딱 하나만을 남겨두자면 '독립성'이었다. 애초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였다. 정부를 겨냥할 수밖에 없는 특조위에 독립성이 없다면 그건 있으나마나했다. 정부는 특조위가 독립적인 조사 활동을 할 수 없도록 길을 원천봉쇄하는 방법을 택했다. 2015년 3월, 파견 공무원인 기획조정실장이 위원회와 소위원회 업무를 장악하도록 하는 특별법 시행령을 내놓은 것이다. 이대로라면 조사 대상자가 조사 업무를 관장하는 꼴이었다.

이석태 특조위원장과 권영빈 진상규명소위원장, 박종운 안전사회소위원장 등은 광화문 광장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임명장을 받은 지 고작 한 달 지났을 때였다.

일주일간 찬 바닥 신세를 졌지만 큰 보람은 없었다. 정부는 특조위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 수정안을 발표했지만 이는 꼼수에 불과했다. 기획조정실장은 행정지원실장으로 명패만 바꿔 달았고, 관할 업무 내용을 '기획 조정'에서 '협의 조정'으로 살짝 고쳤다. 그러고선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며 5월 시행령을 공포했다.


▲해양수산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수정안 발표를 앞두고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수정안 수용 불가 기자회견을 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프레시안(서어리)


울며 겨자 먹기로 시행령 수정안을 받아든 특조위는 머지않아 정부에 또 크게 한 방 맞았다.

2015년 5월 6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직후, 이 위원장은 "정부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됐다고 해서 특조위가 출범하는 것이 아니라 인적·물적 설비가 갖췄을 때에야 되는 것"이라며 특조위가 정식 출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정부는 그러나 이 의견을 묵살하고 특조위 출범을 기정사실화했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당시 장관은 5월 1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회의에서 "특조위 활동과 임기는 시행령 특별법에 따라서 1월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위원회가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활동을 완료해야 한다'는 세월호특별법 7조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특조위는 이같은 주장이 특별법을 오독한 것이며 내부에서도 한 번도 논의된 적 없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출범 시기 논쟁은 특조위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후 가열차게 진행됐다.


참고로, 시행령 논란은 정부의 시행령을 마음대로 고치지 못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 논란으로 번졌고, 이는 이른바 '배신의 정치'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을 낳았다. 그로 인해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가 박 전 대통령에 의해 쫒겨나게 된다. 


▲세월호 특조위 주최 청문회. ⓒ프레시안(최형락)


2015. 7 ~ 2015. 12 : 청와대 조사 트집 사퇴, 'BH' 조사 대응 해수부 문건 공개

정부는 이번엔 돈줄을 틀어쥐었다. 특조위는 이미 2월에 예산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6개월이 다 되도록 단 한 푼 받지 못했다. 7월에 새로 뽑은 별정직 공무원 31명에게 줄 월급조차 없었다. 정부는 특조위가 행정지원실장, 기획행정담당관, 조사1과장 등 핵심 공무원 파견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이 3개 직위 인사가 되지 않은 기관에 예산을 줄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놨다. 특조위는 또 한 번 물러섰다. 예산을 타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8월에야 겨우 예산이 나왔다. 하지만 반쪽짜리였다. 당초 요구한 예산의 44%를 싹둑 잘라 줬다. 정부는 '타 기관과의 형평성'을 운운했다.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니, 참사 조사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돼있었다. 참사 실태 조사 연구비는 84%, 진상 규명 실지 조사는 68%, 자료 기록관 설치 및 운영비는 89%가 깎였다. 안전사회건설 종합 대책 수립 관련 비용도 83%가 줄어든 채였다.

독립성 위축에 활동 기간도 줄어들게 생긴 판국에 예산까지 꽁꽁 묶였다. 그런데 정작 예산을 타기 위해 노력해야 할 특조위원은 '세금 도둑'을 운운하며 제 발로 박차고 나갔다. 2015년 7월, 여당 추천 조대환 부위원장이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다. "공연히 존재하지도 않는 별개의 진상이 존재하는 양 떠벌리는 것은 혹세무민이며 이를 위해 국가 예산을 조금이라도 쓴다면 '세금 도둑'이 분명하다"며 특조위 해체를 주장했다.

이에 탄력을 받은 여당 특조위원들은 야당 특조위원들과 세월호 유족들을 본격적으로 '대통령 음해 세력'으로 몰아갔다. 유가족 한 명이 신청한 '청와대 등의 참사대응 관련 업무 적정성 등에 관한 조사', 이른바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조사'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이헌 신임 부위원장을 비롯한 고영주, 석동현, 차기환, 황전원 등 여당 특조위원들은 11월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특조위가 정치적 놀음에만 골몰하는 일탈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전원 총사퇴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같은 날, 새누리당 농해수위 위원들도 특조위 해체를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BH 조사 시 여당 위원 사퇴' 지침을 담은 해수부 문건이 언론에 공개됐다. 이 문건에는 "특조위 내부 여당 추천위원들이 소위 의결과정 상 문제를 지속 제기하고 필요시 여당 추천 위원 전원 사퇴 의사를 표명한다", "여당 추천위원이 전원 사퇴하더라도 특조위 위원 구성 상 의결행위에 영향을 끼치기는 어려운 상황이나 위원회의 구성 및 의사결정상 공정성에 문제가 발생함을 집중 부각한다" 등 세부 지침이 담겨 있었다. 해수부-청와대-새누리당의 긴밀한 공작 정치의 일부 단서가 공개된 셈이었다.

23일 전원위원회에서는 '대통령 7시간' 문제를 조사에서 배제하지 않기로 의결했다. 결국 여당 추천 비상임위원 4명은 중도 퇴장한 후 사의를 표명했다. 해수부 문건대로 '위원회의 구성 및 의사결정상 공정성에 문제가 발생함을 집중 부각'하는 행태였다. 이후 석동현‧황전원 위원은 이듬해 열릴 총선 준비를 위해 새누리당에 입당하며 자동 면직 처리됐다.

2016. 1 ~ 2016. 5 : 트러블 메이커 이헌, 돌아온 탕아 황전원

▲이헌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구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 ⓒ연합뉴스

여당 인사 가운데 남은 이는 이헌 부위원장이었다. 그는 혼자 남아 특조위 내부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다른 구성원들과 사사건건 부딪쳤다. 공금을 유용하고, 직원들에게 모욕을 일삼는다는 의혹까지 퍼졌다. 그뿐만 아니라 2016년 1월, '유가족 고발 사주' 논란에 연루되며 내부 조사 대상 선상에 오르내렸다.

임기 내내 특조위 '트러블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던 그는 결국 2016년 2월 사퇴를 표명했다. 마지막 떠나는 자리서도 특조위를 향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절벽에 가깝다", 유가족을 향해 "자식을 잃은 아픔의, 진상 규명을 바라는 온전한 모습 아니"라며 침을 튀겼다.

비어있는 부위원장 자리를 메운 이는 황전원 전 특조위원이었다. 특조위 '내부 방해자'로서 감초 역할을 해왔던 그가 총선 예비후보에서 탈락하자, 5월 새누리당이 그를 부위원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특조위원들과 유가족이 극렬하게 반발했지만, 추천 자격은 새누리당에 있어 막을 도리는 없었다.

특조위를 떠난 이헌 전 부위원장은 '꽃길'을 걸었다. 5월 사퇴 직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자리에 안착했다. 거기서도 그는 세월호 관련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 7시간' 의혹을 보도한 언론을 '기레기'라고 칭하는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 엘사처럼 끔찍한 일에서 벗어나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며 박 전 대통령을 두둔하기도 했다.

2016. 6 ~ 2016. 9 : 박근혜 7시간 의혹 확대, 특조위 폐쇄

특조위 출범 시기에 대한 논란은 1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6월 특조위 종료를 선언하며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6월 22일, 유가족과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는 증언이 나왔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새누리당이, 참사 당일 청와대 조사를 제외하면 특조위 연장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폭로했다. 특조위 활동 기간을 두고 새누리당이 거래를 시도한 것이었다. 새누리당의 이같은 '흥정'은 역효과를 낳았다. '박근혜의 7시간' 의혹을 점점 키운 것이었다.

그러나 커져가는 의혹에도, 특조위는 청와대 조사를 할 수 없었다. 청와대로부터 받은 자료는 조직표 딱 하나뿐이었다.

9월, 특조위는 결국 문을 닫았다. 파견 공무원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고, 집기를 모두 빼내겠다는 협박 비슷한 통보가 날아들었다. 뜻 있는 조사관 몇 명이 YMCA 건물에 다시 둥지를 틀고 6월 말부터 시작된 무보수 활동을 이어나갔다.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컨퍼런스를 연다. ⓒ김형욱 특조위 언론팀장


2016. 10 ~ : 다시 시작된 진상 규명, 그리고 2기 특조위

"정부가 제대로 된 조사를 하라고 특별법을 만들고 특조위를 만든 건지 의심스럽다. 훼방 놓는 거나 다름없었다. 특조위가 열심히 활동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면, 그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권영빈 진상규명 소위원장이 지난해 1월 <프레시안>에 남긴 말이다. 그의 말대로, 1년 9개월여간 정부 여당이 특조위에 펼친 방해 공작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정부 여당의 자축은 오래가지 못 했다. 10월, 최순실 게이트 폭로를 시작으로, 박근혜 정권의 치부들이 낱낱이 공개됐다. 세월호, 세월호 특조위 관련 이슈도 빠지지 않았다. 11월 언론에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에는 참사에 대한 왜곡 선동을 청와대가 지시한 정황이 담겨 있었다.

2015. 8. 23
자살방조죄. 단식 생명 위해 행위. 단식을 만류해야지 부추길 일 X. 국민적 비난이 가해지도록 언론 지도.

특조위에 '정치 지망생'을 의도적으로 심은 흔적도 나와 있다.

2014. 11. 28
세월호 진상조사위 17명
-부위원장 겸 사무총장(정치지망생 好)
*세계일보 공격방안
*②석동현 ①조대환

해수부 기밀 문건에서부터 김 전 수석의 비망록까지 각 문건이 보여주는 바는 분명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 그리고 특조위를 죽이는 데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 여기에 정부 부처와 여당의 조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특조위 2기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결국 '독립성'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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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기자
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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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막내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